묵시문학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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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문학적 상상력 4. 관련 문학 유형들: 신탁과 유언서
1. 신탁 • 역사의 과정을 초자연적 세력들과 다가올 심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역사적” 묵시록들은 명확히 마카베오 항쟁 시기에 처음 생겨난다. 환시의 양식과 결정적인 하느님의 개입에 대한 기대를 사용하는 점에서 특히 다니엘서의 경우 성서 예언과 명확한 연속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헬레니즘 시기의 정치적 신탁들과도 중요한 연속성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헬레니즘의 이런 배경은 역사적 묵시록들과 밀접히 연관되며 동일한 시기에 유다이즘에 나타난 다른 문학 유형, 곧 시빌의신탁서들의 문학 유형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p.221)
1.1 시빌의 신탁서 • 신탁들의 중요성은 아우구스투스가 파기된 신탁들을 2천 개나 가지고 있었고 로마의 시빌의 책들을 편집까지 하였다는 사실에서 그대로 반영된다. (p.223-224) • 시발의 신탁들은 헬레니즘 시기의 신탁들, 특히 정치적 신탁들의 더 넓은 문맥 안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이집트에는 본국 출신의 누군가가 이집트 통치를 재건하고 그리스인들의 소멸을 기대하는 예언의 전통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예들은 민중 역대기와 도공의 신탁이다. 우리는 이러한 일반적 배경을 거슬러 유다인들이시빌의 문학 양식을 수용한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스라엘 전통의 인물들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에녹과다니엘의 묵시록들과 달리 그 신탁들은 이방인 시빌의 작품으로 전해지며, 따라서 명확히 헬레니즘 선전의 세계와 관련된다.(p.224)
1.1.1 시빌의 신탁서 3권 • 이방인들의 신화론에 관한 그런 관심은 유다인들의시빌의 신탁들에서는 예외적이다. 여기서 시빌의 주요한 주제, 곧 역사의 시초부터 있었던 투쟁인 왕권과 주권을 위한 투쟁이 설정된다. (p.226)
1.1.2 일곱번째 임금 • 시빌의 신탁서 3권의 해석은 우리가 미래의 이 임금 또는 나라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크게 의존한다. (p.227) • 일곱 번째 임금은 아직 미래의 인물로 묘사되기 때문에 필로메트로가 통치할 때 씌어졌다는 것이 더욱 그럴 듯하다. 그 프톨레매오 임금이 유다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다는 관점에서 특히 이 연대를 선호하게 한다. 그러한 연대는 이 책의 다른 지시 사항들과도 잘 들어맞는다. (p.228) • 시빌의신탁서에서 로마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기원전 161년부터 로마의 지원을 받지 못했던 필로메트로의 태도를 반향할 것이다. 그것은 이 시기에 로마와 마카베오 가문 사이의 우호 관계와 큰 대조를 이룬다. (p.228)
1.1.2 일곱 번째 임금 • 많은 학자들은 아시아에서 침공해 온 임금을 170년과 169년에 두 차례 이집트를 침공한 안티오코스에피파네스라고 생각하였다. 사실 아시아에서 온 임금은 힉소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이집트의 전통적인 원수였다. 611행에서 그 침공은 미래에 있을 종말론적 사건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암시가 에피파네스의 침공으로 인한 최근의 경험에 의해 야기되었다면, 이 점 역시 이 책이 필로메트로 시기에 씌어졌음을 말해준다. “젊은” 일곱 번째 임금은 필로메트로 자신이거나, 그의 후계자로서 공동 섭정을 하였던 네오스필로파토르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p.228-229)
1.1.3 태양에서 온 임금 • 이 표현의 가장 가까운 병행은 유다의 작품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으며 이집트의 작품인 도공의 신탁에서 발견된다. 여기서 “태양에서 온 임금”은 파라오를 가리키는 오래된 칭호이다. 도공의 신탁은 프톨레매오 임금들을 물리칠 이집트 출신의 임금을 예보한다. 그러나 프톨레매오 임금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파라오의 칭호들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프톨레매오 임금들은 “태양에 의해 선택된” 인물, “태양의 아들이며 태양이 그에게 승리를 안겨준” 인물이라고 말하는 곳도 있다. 시빌의 신탁서 3권에서 “태양에서 온 임금”은 “그리스 계통에서 온 일곱 번째 이집트 임금”과 분리될 수 없다. 세상에 전쟁을 멈추게 할 임금은, 자신의 통치 때 전쟁 및 반대되는 현안 문제들을 멎게 할 인물과 동일 인물인 것으로 추정해야 한다. 그러면 “태양에서 온 인물”은 일곱 번째 프톨레매오 임금으로서 필로메트로이거나 공동 섭정을 한 그의 후계자이어야 한다. (p.230)
1.1.3 태양에서 온 임금 • 만약 이런 해석이 옳다면, 시빌의 신탁서 3권은 프톨레매오 임금을 사실상의 메시아라 부른 것이 된다. 이방인 임금에 대해 그와 같이 긍정적인 태도는 그에 앞서 이미 이사 45,1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이사야서의 이 구절에서 고레스는“나의 메시아”, 곧 “나의 기름부음 받은 이”라 불린다. 정확히 이 유비가 시빌의 신탁서 3,286-294에서 상기된다. • 그런 다음 하늘의 하느님이 한 임금을 파견하시어 피와 불빛으로 각 사람을 심판하실 것이다. 한 왕족이 있어 그의 혈통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주기적인 과정을 추적하듯이 이 부족 역시 통치할 것이며, 하느님의 새 성전을 세우기 시작할 것이다. 페르시아의 모든 임금이 금과 청동과 단철을가져올 것이다. 하느님 자신이 밤에는 거룩한 꿈을 주실 것이고 성전은 참으로 전처럼 될 것이다. (p.230-231)
1.1.3 태양에서 온 임금 • “페르시아의 임금들”이라는 언급은 명백히 5세기에 유배에서 돌아와 재건하는 것을 가리킨다. 파견된 “임금”은 종말론적 메시아가 아니라, 유다인들을 바빌론에서 석방한 고레스이다. 그러나 이 대목은 종말론적 시간을 가리키는 예표론을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예표론은유다인들의 안녕이 호의를 베푸는 이방인 임금의 힘에 달려 있음을 시사한다. 사실 유다인들은 유배 이후 시시 내내 이방인 통치자들에게 충성을 바쳤다. 마카베오 항쟁 이전에는 시리아의 셀류코스를 지원하는 자들과 프톨레매오를 선호하는 자들 사이의 심각한 분열이 있었다. 유다가 셀류코스 왕조와 치명적인 전투에서 꿈쩍 못하고 있을 때 몇몇 유다인들, 특히 이집트에 있는 유다인들이프톨레매오 왕조에게 구원을 기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p.231-232)
1.1.4 시빌의 신탁서의 유다이즘 • 일곱 번째 임금의 예보를 포함한 종말론적 단락들은 이 책의 종교적 · 윤리적 메시지를 위한 틀이 된다. 여러 단락들에서 시빌의 신탁은 파멸로 이끄는 행위와 구원으로 이끄는 행위의 종류를 상세히 기술한다. 종교적 입장은 “계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로 특징지어질 수 있을 것이다. (p.232) • 그러나 시빌의 신탁은 실제로는 율법이 마치 자연법이기라도 한 것처럼 취급한다. 다른 나라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저주받을 수 있다. 강조되는 주요한 요구 조건들은 할례나 음식 규정처럼 명확히 구분되는 유다인들의율법이 아니라, 디아스포라의유다인들이 계몽된 이방인들과 공유하고 싶어한 평범한 윤리이다. 우상숭배가 가장 큰 죄이다. 성적인 남용, 특히 동성연애는 두고두고 비난 받는다. 오만과 탐욕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점성학, 점복, 점술을 명료하게 단죄하는 데에서 더욱 명확한 입장이 드러난다. (p.233)
1.1.4 시빌의신탁서의 유다이즘 • 그러나 시빌의 가르침에는 다른 중요한 측면이 있다.545-572행에서 그리스인들에게 하는 담론에서 그녀는,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것은 “위대하신 하느님의 성전”에서 희생 제사를 바치는 것을 수반한다고 상세히 기술한다. 미래의 이상은 율법을 준수할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희생 제사들로 위대하신 하느님의 성전을 완전히 영예롭게 하는 경건한 사람들의 복구이다. 최후의 유토피아 상태에서 유다인들은 성전 주위에 모여 모두 평화롭게 살 것이며, 이방인들은 “성전에 파견되어” 하느님의 율법을 숙고할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참된 종교를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하며 모든 나라를 위해 예배 장소가 되어야 한다.
1.1.4 시빌의신탁서의 유다이즘 • 거기에 선물을 보내는 것과는 별도로, 이방인들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손을 떼라고 경고한다. 이 시기에 예루살렘을 거슬러 군대를 실제로 파견한 그리스인들은 셀류코스인들이며 그들에게 권면한다. 그러나 만약 프톨레매오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격한다면, 분명히 그들에게도 해당된다. 시빌의 신탁에는 시편 2편과 48편을 상기시키는 환상도 들어 있다. 여기서 이방인들의 임금들이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위해 모이지만, 그들은 하느님께 심판을 받는다. (p.234)
1.1.4 시빌의신탁서의 유다이즘 • 프톨레매오임금이 칭송을 받는 것은 그의 공적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역할은 예루살렘에 집중된 유토피아적인 유다인들의 국가로 가는 길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제2이사야서에서“메시아” 고레스의 역할이기도 했다. 프톨레매오 임금이 이 장면에서 하나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정치적 전망을 알려주는 중요한 사항이다. 시빌은이 전망에서 신탁을 썼다. (p.234)
1.1.5 시빌의 신탁서 3권의 출처 • 이제 우리는 기원전 2세기 중반에 유다이즘의 어떤 집단이 이와 같은 문헌을 생산하였는지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유다의 율법과 성전 예배를 연결하고, 다른 한편으로 프톨레매오 임금을 환영하는 것은 마카베오 항쟁 이전의 합법적인 마지막 대사제였던 오니아스3세 때문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카베오 하권은 오니아스를 매우 경건한 성인 같은 인물이며 특히 성전 예배에 헌신적인 사람으로 제시한다. (p.234-235) • 프톨레매오 왕조에 대한 열광은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어떤 학문적인 집단보다는 전쟁에 가담한 사제들을 후원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있었다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알아듣기 쉽다. 그와 같은 기원은 시빌의 신탁서 3권이 마카베오 항쟁에 관해 이상하게도 침묵을 지키는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p.235)
1.1.5 시빌의 신탁서 3권의 출처 • 시빌의신탁서 3권은 고도의 선전용 문헌이며, 주로 윤리적인 면, 곧 우상숭배, 미신, 그리고 성적인 남용을 피하는 문제에 관해 헬레니즘 세계에 유다이즘을 제시한다. 유다이즘의 이런 관점은 정치적 시각에 통합되어 프톨레매오의 왕권이 계속해서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빌의 이름을 사용한 것은 이방인의 훌륭한 권위가 지닌 무게를 이 관점에 싣기 위해서였다. 사후 예언을 자주 사용한 신탁 양식으로 결정론을 제시하여 시빌의 메시지에 필연성을 부여하였다. 결국 이것은 헬레니즘 세계에서 유다인들의 선전에 적합한 매체였다. (p.236)
1.1.6 시빌의신탁서들과 묵시록들 • 필립필하우어는“시빌의신탁서들은 헬레니즘 시대의 디아스포라유다이즘의 묵시문학을 대표한다”고 썼다. (p.237) • 그러나 시빌의 신탁서 3권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식으로 이방인 세계에 종교적 선전의 기능을 하는 유다의 묵시록은 전혀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묵시록이 그러한 방식으로 사용될 수 없었다는 것이 명백하지는 않지만, 사실상 그런 기능을 행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p.237) • 그러나 시빌의신탁서들에서 지탱하는 모든 틀은 시빌의 권위,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암시, 왕국의 기대 등 수평 축이다. 묵시록들의 수직 축은 사라지고 없다. 천사나 악마, 또는 천상 세계의 우주론에는 관심이 없다. 그 결과 신탁들에는 묵시록들의 신비적 차원이 없으며, 이 차이는 묵시록에 반영되어 있다. 시빌의 신탁서 3권은 죽은 이들의 심판에 관해 아무것도 암시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정치적이고 지상의 차원에 집중되어 있다. (p.238)
1.2 기원전 1세기 이후의 신탁들 • 시빌의 모든 신탁이 정치적 대변혁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시빌의 신탁서 11권은 초기 신탁으로서 아마 기원후 1세기 초에 씌어졌을 것이다. 이 신탁서는 다른 시빌의신탁서들의 정치적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로마를 찬성하며 정치적 대변혁을 예보하지 않는다. 이 책은 묵시록들처럼 신탁들이 한 가지 이념 이상을 위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p.239-240)
2. 유언문학 • 묵시록들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며 헬레니즘 시기에 생겨난 또다른 문학 유형은 유언(testament)이다. 유언은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펼치는 담론이다. 화자는 전형적으로 아들들에게 말하는 아버지이거나 자기 백성이나 후계자에게 말하는 지도자이다. 설화의 틀은 담론이 제시되고 화자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로 끝나는 상황을 3인칭으로 묘사한다. 담론 자체는 1인칭으로 되어 있다. (p.240-241) • 성서에서 유언의 원형(prototypes)은 야곱(창세기 49장)과 모세(신명기 33-34장)의 “축복들”에서 발견될 수 있다. (p.241)
2.1 모세의 유언서 • 유언서들이 묵시록들과 유사한 점은 모세의 유언서에서 가장 명백히 드러난다. 학자들의 지배적인 의견에 따르면 이제 이 본문은 고대 세계에서 승천기가 아니라 모세의 유언서로 알려진 작품이다. 본문의 결론은 유실되고 없기 때문에 원래의 본문에는 모세의 승천도 포함했을 수 있다. 우리는 결론 부분에서 적어도 모세의 죽음에 관해 언급했다는 사실을 기대해야 한다. (p.242)
2.1.1 연대 • 아마 우리는 거의 확실히 모세의 유언서 편찬에 두 단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해야 할 것이다. 첫째 단계는 안티오코스에피파네스 치하의 위기에서 절정에 이른다. 둘째 단계는 6장에서 하스몬왕가와 헤로데에 관한 언급을 삽입하여 역사적 개관을 보충하였고 바루스에 의해 성전이 부분적으로 파괴되는 데에서 절정에 이른다. (p.244)
2.1.2 신학 • 모세의 유언서의 기본적인 신학은 일관적이다.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위하여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이방인들을 혼란 시키기 위하여 당신의 목적을 밝히지 않으셨다. 이 작품은 신명기 31-34장을 어느 정도 풀어서 다시 쓴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p.245) • 모세의 유언서에서 역사는 죄와 벌에 대한 신명기의 틀을 따른다. (p.245)
2.1.3 탁소 • 탁소와 그의 아들들 이야기는 박해에서 하느님의 나라의 계시로 넘어가는 분기점이기 때문에 모세의 유언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p.246) • 역사의 과정에 변화를 가져오는 길은 폭력적인 반역이 아니라 하느님이 행동하시도록―특히 율법을 어기기보다 죽임을 당함으로써―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하느님은 천사를 시켜 원수에게 복수하실 것이며 몸소 당신 왕좌에서 일어서시어 이방인들을 벌하실 것이다. 자연은 대변혁을 겪을 것이다. 사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이스라엘은 별들의 하늘로 현양될 것이며 지옥에 있는 원수들을 내려다볼 것이다. 이와 같은 천체의 높임은 다니엘서에서 마스킬림의 운명을 상기시키며 죽기로 결심한 탁소의 결의를 명확히 설명해준다. 경건한 유다인은 목숨을 바침으로써 하늘의 군대와 더불어 누리게 될 미래의 행복을 확신한다면, 그는 자기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 (p.247)
2.1.3 탁소 • 탁소에 의해 대표된 태도는 1마카2,29-38에 나오는 순교자들을 연상시킨다. 그들은 안식일에 자신들을 방어하기를 거부하고 다음과 같이 결의하였다. “우리는 모두 깨끗한 채로 죽겠다. 너희가 우리를 부당하게 죽였다는 것을 하늘과 땅이 증언해줄 것이다”. (p.247) • 모세의 유언서는 분명히 목숨을 바쳐서라도 순수성과 율법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는 비폭력 정책을 옹호한다. (p.248)
2.1.4 묵시록들에 대한 관계 • 모세의 유언서가 묵시록들과 유사하다는 것은 다니엘서와 비교할 때 가장 명백히 드러난다. 유언서의 중요한 목적은 경건한 유다인들에게 현재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세상은 그들을 위해 창조되었음을 확신시키는 것이다. 다니엘서에서도 역사의 과정은 신비스러우며 특별한 계시를 통해서만 밝혀진다. 두 문서에서 역사의 정점은 하늘나라의 계시이며 천사가 하늘나라를 가져오는데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두 책에서 역사의 개관은 순교의 자세를 지원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다. 역사의 결과는 초자연적 수준에서 성취될 것이다. 유다인들이 해야 할 과제는 신심이지 군사적 행동이 아니다. (p.248) • 모세의유언서의 문학 양식은 묵시록의 양식과 다르다. 모세의 유언서는 모세가 발설한 예언이지 모세가 받은 천사의 계시가 아니다. 그러나 유사한 점들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차명성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p.248)
2.1.4 묵시록들에 대한 관계 • 모세의 유언서와 다니엘서나 에녹1서 사이에는 중요한 신학적 차이가 있다. 모세를 차명으로 사용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모세의 유언서는 신명기의 계약 신학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다. 그 결과 모세의 유언서는 묵시록들에 비해 그리 결정론적 성격을 띠고 있지 않다. 다니엘서와 에녹의 묵시록들 모두 역사의 과정은 정해져 있다. 인간은 단지 이해하고 반응할 수 있을 뿐이다. 모세의 유언서에서 역사의 과정은 인간의 개입으로 바뀔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인간은 사건들의 과정을 직접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과정을 바꾸도록 하느님을 설득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모세의 유언서는 주도권을 잡고 계신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상호 작용을 보존하고 있다. 그것이 신명기 신학의 핵심이다. 이와 같은 신학적 차이는 묵시록과 유언서의 문학 유형들 자체에 수반되는 게 아니다. 유언서들은 반드시 계약 신학에 묶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 차이는 이 문학 유형들이 기원전 2세기에 실제로 사용된 방식들을 반영하고 있다. (p.249)
2.1.5 모세의 유언서의 편집 • (탁소와마따디아) 두 인물은 모두 사제 가문 출신이다. 두 사람 다 율법과 그들의 선조들에게 충실하며 이방인들의 불경을 한탄한다. 두 사람 다 그들의 아들들에게 배교하는 죄를 짓기보다 차라리 죽을 것을 권한다. 그러나 마따디아는 군사적 저항을 옹호한다. 마따디아는유다에게 복수할 것을 기대한다. 탁소는 하느님께 기대한다. 실제로 항쟁이 있을 당시에 이와 같은 대비가 어느 정도까지 명백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행동과 순교 사이의 기본적인 대비는 불가피하다. (p.250) • 비폭력적 저항의 자세는 유다이즘에서 로마와전쟁을 벌이기까지 줄곧 열성을 다하려는 충동과 나란히 꽃피었다. (p.250)
2.1.6 유다이즘에서의 위치 • 모세의 유언서는 이스라엘 안에 율법을 준수하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 사이에 분열이 있음을 명백히 전제한다. 의로운 이들이 분리된 공동체로 조직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p.250-251)
2.2 열두 성조의 유언서 • 고대 세계로부터 유언문학의 가장 광범위한 작품은 열두 성조의 유언서이다. 현재 남아 있는 이 작품은 명확히 그리스도교 작품이지만, 유다교의 자료를 통합하였다는데 대해서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위경에 대한 현행 연구에서 이 유언서의 편찬 역사는 가장 모순되는 쟁점들 가운데 하나이다. (p.251) • 이 유언서의 편찬사에 관해서는 아직도 완전한 동의가 없다. (p.252)
2.2.1 유다의 전통들 • 많은 학자들은 이 자료가 본디 그리스어로 아마 헬레니즘의 디아스포라에서 편찬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유언서들이 그리스도교 이전의 유다교의 자료를 통합했다는 것이 분명하지만, 이와 동시에 유다교의 요소들은 시험적으로 조심스럽게 식별될 수 있을 따름이라는 것도 명백하다. (p.255)
2.2.2 유언서들의 내용 • 열두 성조의 유언서는 세 개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포함하는 일관된 틀을 드러낸다. 첫째, 성조들의 삶에 관하여 설화 형태로 전하는 역사적 회고. 둘째, 윤리적 권면. 셋째, 미래의 예보. 이 요소들은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p.255-256)
2.2.3 묵시문학적 요소 • 열두 성조의 유언서는 그 양식을 볼 때 분명히 묵시록들이 아니다. 그러나 명백히 차명을 사용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주목할 만한 유사성들도 있다. 메시지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하여 고대의 공경하올 인물의 이름이 차명으로 사용된다. (p.257)
2.2.4 레위의승천기 • 정해진 순서대로 열거되는 하늘들에 관한 유다의 다른 자료들은 기원후 1세기 디아스포라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레위의승천기 역시 디아스포라나유언서들의 그리스도교 편집에서 최종 형태를 갖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p.259) • 이 작은 묵시록의 일차적 목적은 레위를 사제이자 하느님께 선택 받은 자로 합법화시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합법화는 그의 후계자들에게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사제들의 직무를 고양한다. (p.259-260) • 레위의 유언서 2-5장의 본래 환경이 무엇이었든 간에 본문은 명백히 사제직 제정과 폭력 사용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묵시문학적 환시가 반역이나 반대를 표현하는 것은 물론 힘의 사용을 지지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는 것이 괄목할 만하다. ( p.261)
2.2.5 종말론적 대목들 • 역사적 묵시록들과의 중요한 유비가 미래의 예보들을 포함하고 있는 유언서들의 구절들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p.261) • 이 모든 것에서 묵시록들과의 유사성은 초자연적 힘이 인간의 행위들을 관리하고 그 행위들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고에 있다. (p.262) • 초자연적 세력들의 이원론적 대비는 참으로 초기 묵시록들의 신화론적 상징주의의 발전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것은 쿰란에서 명확히 표현되었는데, 쿰란에서는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었다. 쿰란의 경우 이 이원론은 결정론적인 의미를 동반하였다. 유언서들은 자유로운 선택의 단호한 윤리를 결속하기 위해 이원론이 사용될 수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p.263)
2.2.6 메시아 기대 • 열두 성조의 유언서의 기대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메시아를 레위와 유다 모두와 연결한다는 것이다. (p.263) • 레위의 유언서 18장은 사제의 인물에 초점을 모은다. 그는 “새 사제”가 될 것이지만, 그의 별은 하늘에서 임금처럼 솟아날 것이다. 그는 낙원의 문들을 열고 벨리알을 결박할 것이다. 유다의 유언서 24장은 유다의 자손에서 나올 한 사람에 대해 말한다. 하늘이 그에게 열릴 것이며 그에게는 아무런 죄도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방인들 가운데에서 주님께 청하는 모든 이를 구할 것이다. 이 메시아 구절들에는 그리스도교의 영향이 명백히 드러난다. (p.264) • 마지막 형태의 열두 성조의 유언서는 레위와 유다 모두와 연관되며 분명히 그리스도와 동일시되는 한 사람의 메시아를 상상한다. (p.264)
2.2.6 메시아 기대 • 두 사람의 지도자라는 주제는 사해의 종파가 생기기 전인 기원전 2세기에 유다이즘 안에서 생겨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어로 된 열두 성조의 유언서에서 메시아적인 구절들은 명백히 그리스도교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초가 되는 유다의 전통을 재구성하는 것은 매우 시험적이라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 (p.265) • 메시아 기대는 천사의 구원에 의지하는 초기 묵시록들에서 어떤 역할을 거의 수행하지 않는다. 열두 성조의 유언서에서 사제적 메시아에 대한 주된 기대는 마카베오 시대 때 사제직의 부패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났던 것 같다. (p.265-266)
2.2.6 메시아 기대 • 레위의 유언서 18장의 “새 사제”에 대한 위대한 예언은 역사를 일곱 주간 내지 일곱 희년으로 구분하는 예언의 끝에 온다. 일곱 번째 희년의 특징은 사제들의 죄, 곧 우상숭배, 폭력, 탐욕, 방종이다. 레위의유언서에서 유배 이후 시기 전체가 부패했는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마지막 희년은 다른 희년들보다 두드러진다. 끝에 가서 옛사제직은 사라질 것이고, 하느님이 새 사제를 파견하실 것이다. (p.266) • 많은유언서들이 부활을 예보하는 것으로 끝난다. 유다이즘에서 내세와 부활에 관한 가장 초기의 명백한 증거는 에녹과다니엘의 묵시록에서 발견되기는 하지만, 그 신념은 널리 퍼지게 되었고 반드시 완전한 묵시문학적 세계관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들은 유언서들과 묵시록들 사이의 또 다른 유사점을 만들어낸다. (p.266-267)
2.2.6 메시아기대 • 편찬의 역사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열두 성조의 유언서에 대한 우리의 토론은 어쩔 수 없이 결론이 나지 않는다. 마지막의 그리스도교 유언서들은 다양한 원천들에서 자료를 분명히 통합하였다. 이 자료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묵시록들에서 발견되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에 “묵시문학적”인 것으로 명명될 수 있으며, 레위의 유언서는 레위의 승천 이야기에서 하나의 묵시록을 포함하기도 한다. 게다가 아람어 레위기 외경을 포함하여 유언서들의 몇몇 원천들은 에녹문학과희년서, 그리고 쿰란 두루마리들에 밀접히 연관된다. 그러므로 유언서들은 묵시록들의 양식으로 씌어져 있지는 않다 하더라도 더 넓은 의미에서 묵시주의에 대한 증거들이다. (p.267)
2.3 솔로몬의시편에 나오는 메시아주의 • “새 사제”는 유언서들에서 유다 출신의 사람, 곧 민수기 24장에서 발람의 신탁에 따르면 야곱 가문에서 솟아날 별(민수 24,17)에 의해 보완된다. 이 인물은 다윗 가문의 메시아로 여겨졌다. 유다의 위경들에서 명백히 메시아적인 언급은 드물다. (p.267) • 그러나사해 두루마리들의 증거는 메시아 기대가 기원전 1세기부터 널리 퍼지게 되었고 발람의 신탁과 이사야서11장 같은 본문들을 언급하여 자주 표현되었음을 보여준다. (p.268) • 솔로몬의 시편은 묵시문학적인 방식의 계시를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천사의 세계나 하늘의 세계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내세에 대한 믿음을 증거하지만, 종말론의 일차적 관심은 예루살렘의 재건에 있고, 다윗 가문의 메시아가 재건하게 될 것이다. 솔로몬의 시편은 기원전 63년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결과로 씌어졌다. (p.268)
2.3 솔로몬의시편에 나오는 메시아주의 • 메시아초상은 정경 시편들(특히 시편 2편)과 이사야서의 언어를 반향한다. 그는 즉시 나라들을 복종시키고 이스라엘을 구할 것이다. 이런 묘사에 스며 있는 전통들은 대부분 묵시문학과 관계없다. 그러나 기원후 1세기에 메시아에 대한 전통적인 이런 묘사는 차츰 묵시문학적 장면에 통합되었다. 에녹의 비유의 책과 에즈라 4서, 그리고 바룩2서에서 이를 확인하게 된다. (p.269)